정원

니조성 소개

정원

니노마루 정원 –특별 명승-


정원을 만든 연대에 대해서는 기록이나 작풍으로 미루어 보아 1602년∼1603년 무렵(이에야스 시대) 니조성이 지어졌을 때 그 건축에 맞추어 만들어졌으나 1626년(이에미쓰의 시대)의 고미즈노 황제 행차를 위해 일부를 개수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쇼인즈쿠리 양식 정원인 니노마루 정원은 신선봉래의 세계를 표현한 정원으로 일컬어지고 팔진의 정원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고미즈노 천황 행차 당시의 모습은 새로이 증축된 행차 궁전, 중궁 궁전, 궁녀들의 방 등에 둘러싸인 안뜰 같은 정원으로 조성되어 연못 안에 어정을 세워 연못 중앙에 3개의 섬, 4개의 다리를 겸비하여 니노마루 궁전 대형실 조단노마(쇼군의 좌), 니노마루 궁전 흑서원 조단노마(쇼군의 좌), 행차 궁전 조단노마(천황의 좌)·어정을 중심으로 3 방향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습니다.

특히 대형실에서는 정원 너머 천수각의 일부를 조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차 다음해인 1627년부터 4반세기에 걸쳐 니노마루 정원을 둘러싸고 있던 행차 제반 시설은 이축· 철거되어 고보리 엔슈가 정원을 만든 의도도 희미해져 갔습니다. 3대 장군 이에미쓰가 상경한 이후 14대 장군 이에모치가 상경하기까지의 229년간 장군 부재인채 막부 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동안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요시무네 시대에 정원이 개수된 바 있습니다.

시대는 흘러 15대 장군 요시노부 상경 시에는 수목은 거의 없고 연못은 고갈하여 고산수식 정원의 경관은 황폐해졌습니다. 대정봉환 후 니조성은 소관이 계속 바뀌어 궁내성에 소관된 후로는 5회 이상 개수되어 별궁적·영빈관적인 성으로 이용되었습니다. 특히 별궁 시대에 행해진 식재 공사는 막부 말의 정원 경관이 변모할 만큼 대대적으로 개수 공사가 진행되어 오늘날에 이르는 기본적인 경관이 완성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교토시에 하사된 후 니노마루 정원은 1939년에 명승으로 지정되고 1953년에 국가 특별 명승으로 지정되어 문화재적 자산과 관광 요소의 하나로서 유지되어 현재에 이릅니다.

혼마루 정원


혼마루 조영 당시의 정원은 역사 자료가 부족하여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니노마루 정원에 뒤지지 않는 정원이 존재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1788년 대화재의 불똥으로 혼마루 궁전, 모퉁이 망루, 다문 망루 등이 소실. 정원도 번진 불길로 타버려 공터로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막부 말에는 혼마루 궁전 내에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거실이 지어져 정원은 다실풍 정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거실은 노후화로 인해 1881년에 철거, 정원도 철거되어 공터가 되었지만 1893년부터 1894년에 걸쳐 교토 고쇼 내에 있던 가쓰라노미야 저택의 일부가 이축되어 고산수 정원이 만들어졌습니다.

현재의 혼마루 정원은 1895년 5월 23일, 메이지 천황이 혼마루 궁전에 행차하였을 때 기존의 고산수식 정원의 개조를 명하여 약 7개월 반의 시간을 들여 1896년에 완성된 잔디풍 축산식 정원입니다. 메이지 중반이 되면서 서양풍 정원이 많이 만들어진 것에서 혼마루 정원도 적지 않게 그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정원은 동남 모퉁이에 달 전망대(축산)를 배치하고 잔디를 깔아 곡선적인 정원길을 만들고 돌층계(암기석)를 따라 종가시나무, 베니카나메 등을 심고 곳곳에 등롱과 정원석 등을 놓았습니다.

청류원

청류원

창건 당시(이에야스 시대)의 니조성 북부 청류원 지구는 낙중낙외도 병풍 등에서 보면 성내 통로와 천수각의 일부가 존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1624년∼1626년(이에미쓰의 시대)에 걸쳐 니조성의 대개수 때 천수각은 요도성으로 이축되어 공터가 되었습니다. 간에이 시기 이후 경호원(관리하는 무사)의 거처가 지어져 막부 말까지 건조물군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단, 1788년 ‘덴메이 대화재’로 한때 소실). 그들의 거처는 메이지시대 전기에 철거되어 녹지로 정비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1915년에는 다이쇼 천황 즉위식의 향연 장소로 이용되어 향연 시설 등이 증축되었습니다. 이듬해 1916년부터 성내의 복구 공사가 진행되고 향연 시설의 일부는 오카자키 사쿠라노반바로 이축 철거되어 그 옛터는 유명한 조경가인 오가와 지헤 씨에 의해 소린시키 정원으로 복구되었습니다.

1950년 일본 진주 연합군에 의해 테니스장으로 바뀌었지만 1965년에 청류원이 조영되어 현재에 이릅니다. 이 정원은 가와라마치 니조에 있던 스미노쿠라 료이 저택 중 일부와 정원석, 정원 나무 등을 무상으로 제공받고 또한, 일본 전국에서 모은 명석과 독지가의 기증품 등을 사용하여 같은 해에 완성되었습니다. 정원은 당시의 다카야마 기조 교토 시장에 의해 ‘청류원’으로 명명되고 동쪽 절반이 잔디를 깔아 놓은 서양식 정원, 서쪽 절반은 두 개의 건물 및 지천회유식 정원(일본식 정원)으로 이루어진 화양절충 정원으로 감상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정원으로 정비되어 있습니다.

청류원의 볼거리

와라쿠안

와라쿠안

와라쿠안은 1965년 다카세가와 강 이치노후나이리의 스미노쿠라 료이 저택에서 이축한 다도를 위해 지은 건물에 히데요시가 새벽 달을 바라 본 것에서 이름 붙여진 잔게쓰테이를 본뜬 다실을 오모테 센케로부터 기증 받아 증축한 것입니다.

스미노쿠라 료이(1554년∼1614년)는 가쓰라가와 강(오이가와 강)의 호즈쿄 계곡 구간 및 다카세 측 지역을 개착한 자로 알려져 막부 말까지 그 자손에 의해 스미노쿠라 가문이 유지되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스미노쿠라 료이 저택은 교토부가 소관하게 되어 직물 기술 전습소로 이용되었지만 그 후 변천을 거쳐 오사카 부호 다나카 이치베 씨의 별장으로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귀빈을 초대한 다도회, 본 시 사업으로서 가을 시민 대다도회 등을 개최함과 동시에 평소에는 성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처로서 다실 등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향운정

향운정

향운정은 다실 와라쿠안과 마찬가지로 스미노쿠라 료이 저택에서 이축한 것입니다.

평소는 내부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남측에서 외관을 바라보기만 하지만 여름과 겨울에 기간 한정으로 향운정 내에서 식사를 제공하거나 ‘니조성 웨딩’의 결혼식 예식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TOP